취향껏 골라 먹는 북플래터🍽️
시선이 머무는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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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월) 호차는 광복절 공휴일로 쉬어갑니다.
8/25(월) 호차에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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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기하와 재하는 몇번의 여름을 맞을까. 몇번의 사랑을 하고, 또 몇번의 이별을 준비할까. 나는 어떨까. 이 소설을 읽는 당신은. 우리가 맞을 무수한 여름이 보다 눈부시기를. 어딘가 두고 온 불완전한 마음들도 모쪼록 무사하기를. 바란다."
- 두고 온 여름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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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계절에 머물러 있던 감정이 시간이 흐른 뒤 다시금 삶을 건드릴 때의 마음을 정교하게 포착한 소설을 소개해 드려요. <두고 온 여름>은 '기하'와 '재하', 두 인물의 시점에서의 이야기가 교차해요. 그들은 복잡하게 얽힌 가족 관계 속에서 어느 여름을 함께 지나온 후 각자의 삶으로 흩어졌지만, 서로 다시 마주한 순간 그 여름에 남겨뒀다고 믿었던 감정들이 조용히 되살아나죠.
이 소설은 우리가 맺는 여러 관계 중에서도 가족이라는 관계, 그 안에 숨겨진 말 없는 진심을 섬세하게 풀어내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모른 채 살아가는지,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얼마나 큰 오해와 침묵이 존재할 수 있는지를 조용한 문장 속에 녹여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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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과거의 사랑이나 단순한 재회 이야기가 아니에요. 오히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는 다 말해지지 않는 관계, 그 안에서 외면되거나 눌러두었던 감정들을 찬찬히 끌어올려요. 기하와 재하가 마주하는 감정은 그리움, 미련, 분노, 이해, 그리고 용서까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결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리고 그들이 다시 마주했을 때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관계가 어떻게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지를 보여주죠.
작가는 이 모든 감정을 강렬한 드라마 없이, 섬세하고 조용한 문장으로 그려내요. 여름이라는 계절은 단순한 시간적 배경이 아닌, 돌이킬 수 없는 기억과 감정이 고여 있는 시간인 거죠. 뜨겁고 찬란했던 한때의 여름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되는 감정으로 되살아나요. 그래서 이 소설의 매력은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보다 감정의 깊은 결을 따라 흐르는 서사에 있는 것 같아요.
소설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요. 우리는 정말 가족을 알고 있는가. 서로에게 충분히 솔직했는가. 어떤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걸까, 아니면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걸까. 가족이라는 이름이 주는 위로와 그 속의 상처를 이해하고 싶은 북플러들, 혹은 가족이 아니더라도 과거의 어떤 계절을 아직 놓지 못한 채 살아가는 북플러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 드려요.
- 에디터 민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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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열린책들
외국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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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게 무슨 일인가 일어나버렸고 그 애의 이름이 머릿속에서 노랫가락처럼 계속 맴돌았으니, 어른들이 술을 진탕 마시는 불러대는 그런 가락, 그들에게 20대의 눈동자를 돌려주는 그런 노래와 같았다. 비올라, 비올라, 비올라"
- 그녀를 지키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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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도 낭만있는 여름이죠. 쟁-울리는 매미 소리, 햇살 속 신록, 아지랑이 속 도보를 걷는 사람들. 여름 지나면 못 보는 풍경을 저는 너무 좋아하는데요. 이 계절 어울리는 소설이 있다면 <그녀를 지키다>일 거예요.
<그녀를 지키다>는 2023년 콩쿠르 상을 수상한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장편으로, 1910년대 전후 이탈리아 피에트라달바를 그려내고 있어요. 햇살 들어오는 정원, 싱싱한 오렌지가 주렁주렁 달린 오렌지밭, 먼지 날리는 가운데 땀 흘리며 일하는 석공의 모습 등 다채로운 미장센, 주어진 삶을 치열하게 살아나가는 인물들로 꽉 차 있어요. 귀족 중심 사회, 파시즘, 내전 상태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정치 격동도 녹아 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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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1986년 사크라 수도원, 죽음을 앞둔 비탈리아니 미모를 보여주며 시작돼요. 비탈리아니는 수도원 지하에 보관된 피에타를 조각한 사내로, 그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면 늘 비올라란 소녀가 있어요. 비올라는 피에르타달바 귀족의 딸입니다. 얌전히 남편을 보조하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만 자기만의 욕망이 뚜렷한 지적인 소녀예요. 소년 석공 미모는 우연히 만난 그녀에게 매료됩니다. 그녀를 따라 책을 읽고, 세상사에 관심 갖으며 입체적 인물로 자라나요. 바티칸의 발주를 받아 조각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되고요. 반면 비올라는 가치관이 세파에 부딪힐 때마다 내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괴짜 취급을 받는데요. 그럴 때마다 미모는 그녀를 지키기 위한 나름의 행동을 해나갑니다. 피에타는 그녀를 비롯해 시대적으로 고통받던 약자들을 응축한 결과였고요.
"하지만 그녀는 아름다웠고,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렇다는 인상을 주었다. 곰으로 변신할 때 보여줬던 오래된 마술 같은 거였다. 마술사가 원하는 지점에 시선을 묶어두기. 비올라를 바라보는 사람은 그녀의 눈만 보게 되고, 아버지를 닮아 살짝 길다 싶은 얼굴과 살짝 얇다 싶은 입술은 잊고 생각하게 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조각'이라는 건 살아있는 존재와 대척점에 있는 의미로 작용하는 듯해요. 미모의 조각 실력은 시대를 따라 각 정치권이 원하는 이념을 형상화하도록 이용돼요. 반면 비올라는 언제나 본인이 원하는 모습을 주체적으로 드러내죠. 결혼을 거부하다 받아들이고, 또 나중에는 선거에 출마하는 행동들에 대해 미모는 어떤 것은 비올라 답고, 비올라 답지 않다고 평하지만, 사실 모두가 비올라의 당당한 자기 표현이었던 거예요.
서로 이해하다 원망하기도 하는 미모와 비올라의 사랑은 소설의 메시지를 더 풍부하게 하더라고요. 나기에게는 사랑에 대한 특별한 깨달음을 주는 책이었어요. 둘이 연애나 결혼으로 맺어지길 바라며 보다가, 이뤄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어떤 사랑은 물리적으로 상대를 가져야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행복하게 날아가도록 둘 때 내 마음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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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 관하여 수전 손택, 윌북
인문/교양/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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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결코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없게 길러지고, 남성보다 일찍 퇴물 취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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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에 반대한다』, 『타인의 고통』 등을 쓴 미국의 작가이자 비평가 수전 손택이 여성에 대해 쓴 에세이와 인터뷰 7편을 엮은 책이에요.
여성이 나이 들며 느끼는 수치심, 외모와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 욕망과 섹슈얼리티, 영화와 페미니즘, 파시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요. 약 50년 전의 글이지만 전혀 낡았다는 느낌이 없고,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과도 깊이 맞닿아 있어요. 특히 ‘여성의 나이듦’과 ‘아름다움’에 대한 논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죠.
손택은 남성성과 여성성이 사회에서 얼마나 다르게 다뤄지는지를 통찰력 있게 짚어요. ‘남성적인 특성’들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혹은 노력에 따라 획득되는 것들이에요. 능력, 돈, 자신감 같은 것들은 나이와 함께 더 견고해지죠. 반면 ‘여성의 아름다움’은 자연과는 반대로 가요. 의존, 부끄러움, 수동성, 친절함, 무능함 등, 어린 소녀로 대변되는 특성들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고,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죠. 그래서 여성들은 나이듦을 더 수치스럽게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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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자기 몸과 더 긍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자기 몸을 아무렇게나 대접하든 공격적으로 사용하든, 남성은 자기 몸을 더 편안하게 느낀다. 남성의 몸은 강한 몸으로 정의된다.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몸과 실용적인 몸 사이에 아무런 모순도 없다. 여성의 몸은, 적어도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몸은, 허약하고 가벼운 몸으로 정의된다.
- 여자에 관하여 中
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남성의 경우, ‘아름다운 몸’은 곧 ‘실용적인 몸’으로 여겨지지만, 여성의 아름다움은 실용성과 거리가 멀어요. 오히려 가볍고 허약할수록, 즉 실용적이지 않을수록 더 매력적이라는 시선을 받기도 하죠. 물론 요즘에는 건강하고 탄탄한 여성의 몸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여전히 어떤 여성들은 미디어 속 비현실적인 몸매를 선망하고, 근육이 예쁘지 않게 생길까 봐, 어깨가 넓어질까 봐 하고 싶은 운동을 주저하곤 해요. 손택이 지적한 많은 부분들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은, 읽는 내내 묵직한 씁쓸함을 남겨요.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나열하거나, 페미니즘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려는 책이 아니에요. 오히려 수전 손택이라는 개인이 여성성, 페미니즘과 맺고 있는 관계를 얘기하는 책에 가깝죠. 책에는 손택의 글뿐 아니라, 그에 대한 비판글도 실려 있어요. 손택은 당시 급진적 페미니즘 운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고, 정치적 페미니즘의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거든요. 실제로 일부 페미니스트 작가와의 논쟁도 있었고, 그 내용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손택은 실제로 지적 자유를 위해서라면 다수의 페미니스트를 적으로 돌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이에요. 페미니즘이 격상하던 시기의 ‘여성 작가’로 분류되기보다는, ‘수전 손택’이라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방식대로 사유하고 응답하려 했죠. 그래서 이 책은, ‘미국 여성 작가’, ‘지식인’, ‘페미니즘 시대의 아이콘’이라는 말로 환원되지 않는, 수전 손택이라는 개인이 지적으로 세계에 반응했던 흔적이에요. 그래서인지,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로 가득하죠.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든 없든, 여성성과 나이듦, 사회적 시선과 자아에 대한 질문을 품고 있는 북플러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어요. 무엇보다 강한 지적 자극을 원한다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해요. 저도 오랜만에, 무겁지만 꼭 해야할 말로만 채워진 텍스트를 읽으니까 너무 즐거웠거든요 🤣 그 중에서도, 저만 읽기 아까운 손택의 밀도 높은 문장 몇 가지를 공유하며 마무리할게요.
🔖 대다수 여성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일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반드시 요구되어야 한다. 일하지 않으면 여성은 남성에게 의존하는 고리를 절대 끊을 수 없다. 일은 여성이 온전한 성인이 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일하지 않으면, 여성의 일이 남편의 일만큼 값지지 않으면, 기혼 여성은 자기 삶에서 진짜 권력을 얻을 기회, 즉 자기 삶을 바꿀 힘조차 갖지 못한다. 여성의 악명 높은 심리적 강압과 화해의 기술은 진정한 영향력과 자율성의 비굴한 대체물이다. / 여성이라는 제3세계
🔖 오로지 여성이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무엇이 남자에게 좋은지를 망각할 때만 여성의 의식이 변화할 것이다. 남성과 협업해서 이러한 변화에 착수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여성 투쟁의 범위와 깊이를 축소하고 하찮게 만든다. / 여성이라는 제3세계
🔖 여성에게는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 여성은 그저 친절한 것이 아니라 현명해지기를 염원할 수 있다. 그저 쓸모 있는 것이 아니라 유능해지기를, 그저 우아한 것이 아니라 강해지기를 원할 수 있다. 그저 남자와 자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야심을 품을 수 있다. 여성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이들며 이 사회의 나이 듦의 이중 잣대에서 비롯된 통념을 적극적으로 불복하고 저항할 수 있다. 가능한 한 오래 소녀로 살다가 굴육적으로 중년 여성이 되고 그러다 불쾌한 노인 여성이 되는 대신, 더욱 일찍 여성이 되어 계속 능동적인 성인으로 남을 수 있고, 여성이 누릴 수 있는 긴 성생활을 훨씬 오래 즐길 수 있다. 여성은 얼굴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이 드러나게 해야한다. 여성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 / 나이 듦에 관한 이중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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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스턴스 The Substance, 2024
이 책을 읽고 나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영화가 하나 있었어요. 올해 칸 영화제에서 큰 화제를 모은 데미 무어 주연의 《서브스턴스》예요.
과거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대스타였던 엘리자베스(데미 무어)는 50살이 되던 날, 프로듀서에게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해요. 돌아가던 길에 차 사고로 병원에 실려간 엘리자베스는 ‘서브스턴스’라는 정체 불명의 약물을 권유받아요.
이 약을 주입하면,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버전의 나’가 탄생해요. 진짜 나보다 훨씬 더 ‘사회적으로 이상적인 여성’이 내 몸 밖으로 태어나는 거예요. 그 새로운 자아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점점 엘리자베스의 삶을 침범하고, 빼앗고, 삼켜버리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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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우리가 ‘여성답다’고 여겨온 몸, 젊음, 아름다움에 대해 아주 강렬하게 질문을 던져요. 제2의 자아를 통해 여성의 욕망, 경쟁, 수치심, 그리고 사회가 만든 이상적인 여성성의 기준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죠.
장르는 바디 호러라 충격적인 장면들도 많지만, 그 폭력성조차도 여성에게 요구되어온 ‘외모의 폭력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낸 것처럼 느껴졌어요.
손택은 언어로 이 사회의 시선을 해부했다면, 《서브스턴스》는 육체와 감각으로 그 문제를 되묻는 작품이에요. 방식은 다르지만, 두 콘텐츠 모두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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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platter.let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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