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마지막 증명 ⎸오렌지와 빵칼 푸른 5월의 마지막을 앞둔 요즘, 에디터의 플래터로 찾아오게 된 에디터 민트에요.
🌱 북플러님에게도 꼭 읽어봐야겠다고 기억해 두었는데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나요? 저에겐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언젠간 읽고 싶었지만 미뤄뒀던 책들이 있었는데요. 예전에 주변에서 추천받고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저장한 테드 창 작가의 SF 단편소설집 '숨'이 대표적으로 그런 책이에요.
읽고싶었던 SF 소설을 꺼내읽다 보니, 다른 SF 소설들도 궁금해져 찾아읽게 됐어요. 이번 호차에서는 '숨'을 포함해 제가 최근 재미있게 읽게 된 SF 소설집 3권을 추천해 드리려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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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도 과거를 지울 수 없습니다. 다만 회개가 있고 속죄가 있고 용서가 있습니다. 단지 그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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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의 '숨'은 양자역학, 인공지능, 시간여행 등 복잡해 보이는 과학 개념을 이야기 중심으로 풀어낸 단편소설집이에요. 인간의 자유의지, 기억, 정체성, 죽음 같은 철학적 주제를 탐구하는데요. 9개의 단편은 분량이 길지는 않지만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기에 긴 여운을 남기죠.
그중에서도 저는 시간에 대한 통찰을 담은 단편소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을 가장 인상깊게 읽었어요. 주인공인 바그다드의 옷감 상인 '푸와드'는 어느 날 연금술사 '하짐'의 가게에서 과거와 미래로 통하는 시간의 문을 발견해요. 하짐은 푸와드에게 그 문을 통해 실제로 과거와 미래를 다녀온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요. 각 이야기에는 '시간의 문을 지나도 과거를 바꿀 수 없으며, 문을 통과한 뒤 무엇을 하는가는 오직 그 사람의 몫'이라는 공통된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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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사별한 아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한 후회와 상실감을 품고 있던 푸와드는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 문을 통과해요. 이러한 시간여행을 통해 그는 자신이 바꾸려 한 과거조차 사실은 정해진 운명의 일부였다는 것을 깨닫고, 슬픔을 수용하고 평화를 얻어요. (어떤 시간여행이었을지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보기를 추천!)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가 아니라,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관점이 신선했어요. 그래서 이 책은 과거의 선택이나 실수를 후회하는 사람에게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가능하다는 위로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큰 사람에게는 지금 이 순간의 선택과 자세가 중요하다는 통찰을 줄 수도 있겠죠. 종합적으로는 죽음, 이별, 노화, 무상함 같은 시간의 흐름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독자가 이 소설을 읽는다면 시간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 과학적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 존재를 고찰한 과학 철학서(?) 같다고 생각했어요. 꼭꼭 씹어 읽어야 진가가 드러나는 소설인 것 같아요. 철학적 SF에 관심 있는 북플러들은 시간을 들여 읽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소개하는 글만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SF 소설이에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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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빛을 보낼게요. 기대하는 마음으로요. 계속해서 보낼 거예요. 제가 과거에도 다녀올 수 있었잖아요? 이 우주엔 말도 안 되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니까. 말도 안 되는 우리 이야기가, 엇갈렸을지라도 끝내 맞닿은 것처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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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진 작가의 '마지막 증명'은 그간 북플래터에서 종종 소개해 온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 작품으로, 물리학자 '백영'과 '양서아'를 주인공으로 하는 SF 로맨스 소설이에요. 한국물리학회 SF 어워드 가작 수상작인 단편 '마지막 선물'을 경장편으로 확장한 소설로, 대재앙 이후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간절한 마음을 그렸어요.🌟
과거 인류는 외계 문명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퍼스트 콘택트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결과 생성된 웜홀인 '대공'은 지구에 대재앙을 초래했어요. 소설은 2044년 백영의 집 마당에 정체불명의 운석이 떨어지며 시작되는데요. 며칠 후 비정상적으로 쪼개지는 운석을 보며, 백영은 2년 전 대공 너머로 사라진 자신의 물리학자 동료 양서아를 떠올려요. 백영은 대공을 닫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며 우주로 떠난 양서아를 구하기 위한 결심을 하게 되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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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으로 먼 거리에서도 서로를 떠올리는 두 주인공은 우리를 비이성적으로 만들기도 하는 사랑의 힘을 보여줘요. 양서아는 모든 생명은 죽고, 영원은 존재하지 않기에 이별은 필연적이고 그런 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논리적인 인물이에요. 그렇지만 백영을 알게 되며 이성과 감성의 충돌을 겪죠. 백영은 홀로 대공으로 떠나버린 양서아를 원망하면서도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며 그녀를 잊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줘요. 그리고 양서아가 떠난 후에야 그녀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이해하며, 떠나버린 그녀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보여주죠.
과학과 감정, 이성과 사랑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는 두 주인공의 로맨스가 돋보이는 소설이에요. 북플러님도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그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적 있나요? 곁에 있던 상대방이 떠났을 때에야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을 더 명확히 인식하게 되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이성과 논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랑의 감정을 깨닫는 과정에 대해 고민한 경험이 있는 북플러라면 더욱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거예요.🌹
🌱: 이 책을 읽고 저의 예전 짝사랑 상대가 생각났어요. 당시에는 그 친구를 동경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와의 사이가 멀어지고 먼 훗날 돌아본 후에야 깨닫게 되었죠. 그건 동경이 아니라 사랑의 감정이었다는 것을요. 지나고 나서야 선명해지는 감정이 있는 거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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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를 존중할 수 있다. 단, 네가 나를 존중할 때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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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예 작가의 <오렌지와 빵칼>은 현대 사회에서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억눌린 감정을 지닌 이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 SF 미스터리 소설이에요. 뚜렷한 색감의 표지만큼이나 강렬하고 솔직한 소설이라 몰입해서 단숨에 읽어버렸어요.📙
주인공 '오영아'는 27세의 유치원 교사로, 주변의 기대와 도덕적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며 점차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죠. 자신이 착하기만을 바라는 애인과 친구에게 부담을 느끼고, 직장에서는 폭력적인 아이를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지쳐갔어요. 그러던 중 뇌 수술 센터에서 도파민 분비를 조절하여 감정의 억제를 해제하는 '정서 변화 시술'을 받게 되면서 그녀의 삶은 극적으로 변화하게 돼요. 억눌렸던 감정이 폭발하며, 착하게만 살았던 이전과는 다른 삶을 경험하게 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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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가다 뇌 시술을 통해 억압에서 벗어난 주인공 오영아의 모습은 비도덕적인 사회인이라고도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자기 검열에서 해방되는 개인의 모습이기도 해요. 어쩌면 현대 사회에서 요구되는 일반적인 도덕적 기준 등이 사실은 위선적일 수 있으며 개인이 가진 고유한 감정과는 상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했어요.🧐
🌱: 북플러님은 항상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낀 적이 있나요?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소설인 것 같아요. 꼭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할 때 읽으면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책으로 딱인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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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차에서는 제가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SF 소설들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SF 소설은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난 상상력을 펼치고, 현실의 본질과 인간 내면을 새롭게 바라보고, 현대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매력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이야기 속에서 의미를 찾는 독서였어요.
북플러님에게도 이런 SF 소설만이 가진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호차였기를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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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platter.let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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