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껏 골라 먹는 북플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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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베일 서머싯 몸, 민음사
영미문학/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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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의 베일, 살아 있는 자들은 그것을 인생이라고 부른다."
- 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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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오후, 키티는 그녀의 집에 찾아온 불륜남 찰리와 여느 때와 같이 밀회🚨를 즐기다가 방문 밖의 인기척을 느껴요. 1층으로 내려가 본 두 사람은 직감적으로 남편 월터가 이른 퇴근 후 집에 왔다 갔음을 알게 되죠 😱
도파민 터지는 도입부🎇로 시작한 소설 <인생의 베일>. 화사하고 부드러운 표지와는 반전되는 매운 이야기의 시작이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에요. 키티와 찰리는 어떻게 만난 거며, 월터는 정말 그 둘을 목격한 것일까요? 월터는 키티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모든 사건의 시작은 키티와 월터의 결혼으로 거슬러올라가요. 주인공 키티는 아름다운 상류층 여성이었고, 월터는 키티에게 첫눈에 반한 근면 성실한 남자였어요(세균학을 연구하는 지적인 타입). 키티는 그에게 매력을 느끼기보단 결혼적령기를 넘겼다는 조급한 마음에 결혼을 하고, 홍콩으로 이주하게 돼요. 그녀는 낯선 홍콩에서 우연히 찰리를 만나 불륜 관계를 이어나가죠.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월터에게 불륜 현장이 발각되고, 배신감에 휩싸인 월터는 아내를 협박해 함께 콜레라가 창궐 중인 중국 내륙 지방으로 또다시 이주하게 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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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휘몰아치는 소설의 앞부분이에요. '아내의 외도'라는 가려진 베일을 한 겹 걷어낸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할지 뒷부분이 더욱 궁금해졌던 소설이에요.
<인생의 베일>은 콜레라 현장으로 떠난 키티의 변화와 성장 과정을 그려내요. 감정과 욕망에 지배되어 살아온 키티는 질병과 죽음에 맞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자기를 돌아보게 돼요. 그리고 그녀의 내면엔 서서히 감정의 동요가 생기죠. 또 몰랐던 남편 월터의 다양한 모습들을 재발견해요(키티는 월터를 사랑하게 될까요?).
"당신은 나를 경멸해요?"
"나는... 나 자신을 경멸해."
- 인생의 베일 中
저는 사실 월터라는 인물에 대해 더 궁금해졌어요. 과연 그는 어떤 마음으로 아내를 데리고 콜레라 창궐 지역으로 떠났던 것일까요? 자포자기의 심정이었을지, 키티를 향한 복수심이었을지, 사랑하는 아내를 붙잡고자 하는 마음이었던 건지.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키티와 달리, 모든 감정과 생각이 가려져 있는 것만 같은 월터라는 인물에 더 마음이 가더라고요. 세상에는 남들이 나의 전부를 알지 못하도록 가리고 사는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마라맛 불륜 치정극인가 싶었는데, 두 인물의 인생에서 가려진 것은 무엇인지, 내 인생에서 가려진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며 읽게 된 작품 <인생의 베일>. 입체적인 두 인물의 모습을 보며 다양한 관점에서 읽기 좋은 책 같아서 북플러님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어떤 생각을 품게 될지도 궁금해져요.
- 에디터 영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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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왜 왔어? 정해연, 허블
미스터리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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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내가 물을게. 내가 죽는 게 내 잘못이야?"
- 우리 집에 왜 왔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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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시작되는 초입, 120페이지 남짓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미스터리 단편 소설 모음집을 준비했어요. 오늘은 <홍학의 자리>로 유명한 정해연 작가가 쓴 <우리 집에 왜 왔어?>를 소개해드려요.
책은 단편 세 개로 이루어져 있고, 표지에서 세 단편이 어떤 내용인지 먼저 볼 수 있어요. 강아지 그림은 <반려, 너>, 지하철 그림은 <준구>, 집 그림은 <살¾>.
미스터리 장르와 정말 딱 맞는 제목이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이전에 영화 숨바꼭질을 보면서 당장 영화관에서 나가고 싶은 공포를 느꼈던 게 생각났거든요. 가장 안전해야 할 곳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원초적인 감정이 제목으로 잘 표현되어서 읽기 전부터 흥미로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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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제일 재밌었던 글은 두 번째 단편인 <준구>.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던 평범한 입시강사 준구는 우연히도 같은 칸에 타 있던 한 승객이 죽는 장면을 목격하며 경찰 조사를 받게 돼요. 뒤숭숭한 마음으로 어서 집에 돌아가 아내를 만나고 잠든 딸의 방에 가서 뽀뽀를 해주려던 그 때, 침대에 있어야 할 딸은 없고 베개가 올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그 순간 울리는 준구의 전화에서는 딸의 납치범의 목소리가 들려와요. 그리고 상황은 빠르게 전개되죠.
소설 자체의 특별함도 있었지만, 미스터리 장르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강점이 돋보이는 책이었어요. 전작인 홍학의 자리에서도 소설의 막바지까지 도대체 범인이 누구일까 하며 독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던 작가가 짧은 단편에서도 끝까지 텐션을 유지하면서 서사를 놓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독자들이 시간이 지루하지 하지 않았기만을 바란다는 작가의 말은 저에게 있어 대성공이었는데, 북플러님에게 이 단편이 올해 여름 소설 읽기의 초입이 되기를 기대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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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문학동네
한국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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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수치스러웠다. 내가 그 글을 쓰면서 남들에게 어떻게 읽힐지 의식했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 표현하고 싶은 생각이나 느낌을 그대로 담았을 때 감상이라고, 편향된 관점을 지녔다고 비판받을까봐 두려워서 나는 안전한 글쓰기를 택했다. 더 용감해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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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값은 치솟고 잘난 사람은 빽빽하게 많고. 나를 안전한 위치에 올려놓기 위해서라도 위만 바라보게 되는 요즘, 내 영혼은 어떻게 돌보고 있나요. 어려운 사람을 그냥 스칠 때,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간단히 분리하고 재단하게 돼버렸을때 "나 괜찮을까" 싶은 감정을 어떻게 해소하고 있나요.
문득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닌 것 같을 때, '희미한 빛'이라도 잡아보고 싶다면 최은영 소설집을 권해요. 대표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포함한 7편의 단편 서사에 걸쳐 최은영 작가는 누군가의 삶 변두리에 위치하는 이웃으로서의 우리 모습을 담아 놨어요.
'갑을을 넘어 갑을병정의 세계를 드러낸다'는 정희진 서평가의 문장은 이 소설의 핵심을 잘 잡아내고 있는 듯해요. 하나의 노선을 선택하도록 내몰리지 않는 '병'이나, 나설 용기가 없는 '정'이 분명 세계엔 존재하거든요. 그레이존에 있는 병, 정이 존재감을 입게 되는 건 특별한 행동이 아니라 아주 희미한 부끄러움을 통해서라는 걸 작가는 얘기하고 싶은 걸로 보여요. 최은영 소설의 병, 정 들은 '내가 세상의 기준'이라는 착각으로부터 깨어나는 순간 내면의 전사가 되어 타인의 세계와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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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된 단편 <답신>에서도 화자는 15살 연상의 선생님과 불행한 결혼생활을 한 언니의 삶을 다른 시각에서 돌아보며 언니의 삶을 인정하고, 자신과도 화해해요.
"그때 내 마음에서 나는 옳고 언니는 그르고, 나는 맞고 언니는 틀리고, 나는 알고 언니는 모르고, 나는 할 수 있고 언니는 할 수 없고, 나는 용감하고 언니는 비겁하고 (...) 모든 것이 분명해서 더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믿었어. 하지만 긴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그중 어느 하나도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아."
-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中
주제를 명중하기보다 맴돈다는 것. 그게 최은영 소설을 찾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그의 문장은 여름 침대보 위, 흩날리는 레이스 커튼이 생각날 정도로 편안해요. 함부로 옳고 그르단 말을 꺼내지도, 드라마 퀸 같은 화자도 등장하지 않거든요. 작품에 존재감을 드리우기 위해 사건을 만들지 않고, 그저 연약하고 부드러운 자신을 받아들이는 화자들은 참 무해해요. 수록 단편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의 화자 기남이 마이클의 인생 속에서는 결국 자신이 '낯선 혈육'임을 인정하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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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기남은 그애가 한 계절만 지나도 오늘의 일을 잊을 거란 걸 알았다.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그애에게 그저 멀고 낯선 혈육이 되리라는 것도. 하지만 그 사실이 자신을 더는 슬프게 하지 않는다고 기남은 생각했다."
-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中
그러고 보니 최은영 작가가 생각하는 글 쓰는 사람이란 그녀의 인물들처럼, 고요히 빛을 비춰주는 사람인가보다 싶네요.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희원에게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이었던 것처럼. 최은영의 문장은 확신에 찬 말은 아니더라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결심을 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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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서림
강원 강릉시 임영로 138 1층
얼마 전 긴 연휴의 끝, 에디터 민트는 강릉 여행을 다녀왔답니다. 강릉 바닷가 근처를 거닐다 만난 감각적인 독립서점, '윤슬서림'을 북플러님에게도 소개해요.
강릉 바다의 푸르고 잔잔한 윤슬처럼 일상의 소음에서 멀어져 고요한 온기를 느끼기 좋은 장소였어요. 나무 질감의 인테리어와 차를 한 잔 하기 좋은 공간도 눈에 띄었죠. 잠시 머물며 다양한 책들을 구경하는 여유를 만끽했어요. 혼자여도, 누군가와 함께여도 고요하게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으로 추천해 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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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platter.let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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